사단의 가장 강력한 능력은 죽음의 권세였다. 사단은 지금도 우리에게 죽음의 그림자로 우리를 위협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 주님의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이제 우리 믿는 자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주님의 부활을 통해 영생을 얻었기 때문이다. 2012년 4 월 8일 부활절
믿음이란
매일매일 온갖 구실을 붙여가며 자기를 끌어당기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그 싸움에서 이기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을 바르게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신뢰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그와 같은 사람이 일평생 동안 열심으로 교회생활을 할 수는 있지만 그를 통해 야긴과 보아스*의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먼저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은 자기를 버리라는 말이요, 자기를 이기라는 말입니다. 자기를 버리고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를 통해서만 주님께서 온전히 역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나는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킨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매일 자신을 버리고, 매일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에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더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대적이었던 그 바울 역시 야긴과 보아스*의 하나님에 의해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 하나님의 대책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가 이땅에 살아있는 동안 일평생 싸워야 될 대상은 절대로 우리의 밖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될 대상은 언제나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려는 우리를 온갖 이유를 붙여가며 본능적으로 자기를 따르도록 우리의 발목을 끌어당기는 자기, 하나님의 말씀앞에 나를 던지려할 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속으로 우리를 끌어내리려는 자기, 그 자기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동력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전능하신 하나님 그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그분의 능력은 영원하시기에 그 영원하신 능력을 믿음으로 미구에 공동묘지에서 썪어 문들어질 나자신을 간단히 재압할 수 있고, 나를 이김으로 야긴과 보아스*의 하나님에 의해 쓰임 받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삶이 왜 무기력하며, 왜 하나님의 역사와는 무관한지 우리는 이제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보다 우리 자신들을 더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본능적으로 자신을 더 신뢰하게 만드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도무지 이기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남보다 썩어 문들어질 자기를 더 믿고 의지하고서여, 자기 인생을 세우는 것은 고사하고 어찌 우리가 이 세상을 밝히는 진리의 등불이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보다 실은 우리 자신을 더 신뢰했던 우리의 불신앙을 회개합니다.
도무지 자기자신과 싸워 이기려 하지 아니했던 우리의 안일함과 나태함을 회개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을 믿음으로 그 능력을 힘입어 날마다 나를 쳐 복종시켜 나를 이기는 자 되어 이 세상의 악과 맞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하나님의 용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자기를 싸워 이기는 자는 세상의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우리를 가리켜 바로 저 사람들로 인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 100주년 기념교회 이재철목사님 사도행전 강해 중 -
* 야긴과 보아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두 기둥의 이름은 야긴과 보아스입니다.
야긴과 보아스는 프리셉트 성경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야긴 - 원뜻은 똑바로 서다, 그가 세우실 것이다라는 의미, 하나님이 성전의 건립자이심을 나타낸다.
보아스 - 힘이 그에게 있다는 뜻, 하나님께서 성전에 힘을 주시고 영원토록 지속시키심을 시사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두 기둥에 의해서 힘을 받고 세워집니다. 그 큰 기둥 두 가지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야긴 속에 담겨진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 하나님께 뿌리내리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제대로 설계하고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보아스 속에 담겨진 의미인데, 계속해서 하나님께 의탁드리며 기도하며 그분의 뜻을 구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건물은 지어지는 것만으로 그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유지 보수를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령께 민감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그분의 능력 가운데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소중한 성전인 우리 모두가 우리의 뿌리를 알고, 하나님께 계속 붙어 있어서 그 생명을 공급받아 멋진 성전으로 지어져 가길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정녕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을 믿는다면,
머지않아 한줌의 흙으로 사라져버릴 우리 자신을 버리고 자기를 능히 이기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쫓음이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결정적인 순간일 수록 우리 자신의 발목을 끌어당기는 우리자신에게 굴복하는 어리석은 삶을 되풀이 해왔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였던 우리의 불신앙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하옵소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먼저 자신을 부인하라고 말씀 하신 주님
믿음은 자신을 버리고 이기는 것이요,
우리가 일평생 싸워야 할 대상은 우리 자신임을 잊지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기에 날마다 자신을 쳐 복종시켜 자신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하나님의 능력속에서 자기 안일과 자기 욕망과 자기의 유익만 꾀하는 이기적인 자신과 싸워 이김으로 이땅에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하나님의 진정한 용사가 되도록 하여주옵소서
팔십노인의 빈텉털이에 불과하던
그 모세를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게 하시고
그 모세를 40년간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그 모세를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가 되게 하시고
그 모세를 하나님의 대언자가 되게 해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가 믿는 야긴과 보아스의 하나님이심을 잊지말게 하여 주옶소서
그리하여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신비로운 능력속에서
이 사회와 역사를 새롭게 하는 이 시대의 모세와 바울로 살아가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시편과 잠언서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온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으리라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임을 잊지않도록 도와주옵소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만 하나님의 사랑을 바르게 알고
그 사랑에 절대 순종할 수 있음을 기억하게 도와주옵소서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참되고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신앙의 출발점임을
언제 어디서나 명심하게 도와주옵소서
이제부터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여 하옵소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영원히 책임져 주실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할까 두려워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기에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신뢰하며
그 사랑을 힘입어 날마다 거룩함과 정결함을 이루어가게 하여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삶과 이땅의 교회가 새로워지게 하옵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우리로 인해 이 사회가 날로 정화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어
세상이나 자신을 우상으로 삼아 자기 생명을 스스로 갉아먹다가
마지막날 그제야 땅을 치고 후회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우리가 정녕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다면 그 약속이 우리의 삶속에서 성취되는 때를 결정하시는 분 또한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다고 해서 그 약속이 내가 정한 시간에, 나의 생전에 모두 이루어지는 것을 볼 것이라는 자기 집착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믿는 부질없는 짓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에 그 약속이 성취되는 때 마져도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는 것은 오직 영원을 믿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한시적인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모두 영원한 약속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믿을때, 우리가 이땅에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이 성취되는 것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러나 더 많은 약속들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하신 하나님의 품에 안긴 뒤에 영원속에서 성취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한데 반해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우리의 일생이란 영원의 한 부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바르게 깨닫고 믿을 때에만 우리는 진정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돼, 그 약속이 영원한 약속인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과 무덤마져도 그 영원한 약속을 위한 이정표로 세웠고, 그 결과로 그들이 믿었던 그 약속은 영원속에서 그들의 후손들의 삶속에서 대를 이어가며 성취되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을 때에만 영원한 약속을 믿는자 답게 오늘 우리가 뿌려야할 씨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분별하고 실행할 수 있고, 영원속에서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가 믿은 그 약속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영원한 약속입니다.
그약속이 성취되는 때를 결정하는 분은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만사의 때가 오직 그분에게 속해있습니다.
그분이 작정하신 때가 우리 각자에게 가장 좋은 때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믿은이 무엇이겠습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영원한 약속임을 믿는 것입니다.
지혜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때를 결정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임을 아는 것입니다.
성숙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맞는 매일 하루하루가 영원의 한 부분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신실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믿는자 답게 내가 오늘 뿌려야 할 씨앗을 최선을 다해서 뿌리는 것입니다.
무엇이 믿는이의 분별력이겠습니까?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더 잘 아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누가 행복한 그리스도인이겠습니까? 내가 믿는 하나님의 약속이 내가 정한 때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자기 집착에서부터 해방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가 믿은 모든 하나님의 약속이 그의 후손들의 삶속에서 대를 이어가며 결실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님 설교 중 -